* 이 글은 한겨레(2018년 6월 14일자)에도 실린 글입니다.

 

야생에서 돌아온 지리산 반달곰, 안녕한가요?

 

글_ 윤주옥 이사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

사진_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

 

나는 구례 화엄사 입구에 있는 종복원기술원(이하 기술원)에 자주 들른다. 거기에 가면 ‘생태학습장’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는 반달곰들을 만날 수 있고 거기에 더해 반달곰 복원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반달곰을 사랑한다.

반달곰 KM-53이 지리산을 떠나 수도산으로 향하던 시기에 나는 그 생태학습장에서 반달곰 똥 치우기, 풀베기 등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똥을 치우고 풀을 베며 반달곰 KM-53이 지리산이든, 수도산이든 그 어디에서라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기만을 바랐다.

생태학습장에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반달곰 KM-53과는 다르게 좁은 울타리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반달곰들이 있다. 그 반달곰들의 눈빛은 몹시도 슬프고 아련했다.

↑생태학습장에서 볼 수 있는 반달곰

 

지리산에서 반달곰 복원사업이 시작된 건 2004년이다. 2004년 10월, 러시아에서 6마리의 반달곰을 도입하여 방사한 후 지금까지 40여 마리가 방사되었다. 다행히 방사한 반달곰들은 자연에 적응하고 있고, 자연에서 짝을 짓고 새끼를 낳으며 개체 수도 늘어가고 있다.

기술원의 반달곰 통계에 따르면, 도입하여 방사된 개체는 42마리이고 자연출산 개체는 52마리이며, 지리산 인근에는 60여 마리가 살고 있다고 한다. 방사와 자연출산 개체를 합치면 94마리인데 지리산에 60여 마리가 산다면 나머지 반달곰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일부 개체는 자연사, 올무, 농약, 사고 등으로 죽었고, 일부 개체는 자연에 적응하지 못하여 바로 내가 자주 들르는 이곳 생태학습장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생태학습장에서 만나는 반달곰들은 지리산에 살고자 북한, 러시아, 중국, 서울대공원 등에서 긴 여행 끝에 지리산까지 왔으나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자연 속에 살지 못하고 우리에 갇혀 살게 된 불쌍한 신세의 곰들인 것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만약 그 반달곰들을 지리산에 그대로 놔둘 경우 사람과의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고, 벌통, 사과 등을 건드려 지역주민과의 갈등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에 적응하지 못한 반달곰들이 사는 생태학습장(위)과 사육동(아래)

 

내가 생태학습장 반달곰들의 눈빛에서 슬픔을 읽은 것은 이러한 사연을 알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생태학습장은 인공 동면굴, 목재 놀이 시설물, 계류장, 사육동, 증식동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생태학습장의 반달곰들은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아가야 한다. 또한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그 자체도 우리일 뿐인 생태학습장 속에서도 다시 더 비좁은 사육동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정해진 순번에 따라 한 마리씩만 제한된 시간동안 나무와 작은 연못 등이 있는 생태학습장 마당에 나올 수 있다.

↑사육동에서 마당에 나갈 순번을 기다리는 반달곰

곰으로서는 모진 운명을 맞은 것이라고 해야 할 생태학습장의 반달곰들은 반달곰 복원사업의 또 다른 결과물이며, 이는 사업 초기부터 예측되었던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복원사업 초기에 예상했던 수보다 훨씬 많은 수의 반달곰들이 이곳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생태학습장의 넓이는 8,106㎡인데 이는 10마리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 생태학습장에는 초기 예상보다 2배쯤이나 되는 18마리의 반달곰이 살고 있다. 그러니 이곳에 있는 반달곰들의 삶은 편안할 수가 없다. 생태학습장 마당에 나가서 나무와 풀, 연못의 물을 만나려면 쇠창살로 만들어진 사육동에서 순번을 기다려야 하니까.

기술원은 생태학습장을 넓히기 위해 주변 땅 매입을 계획하기도 했다. 그러나 토지소유주들과의 땅값 조정에 실패하였고, 그래서 다른 곳에 이곳과 비슷한 공간을 추가로 조성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 생태학습장에서 물놀이하는 반달곰

지금은 18마리지만 앞으로 또 몇 마리의 반달곰들이 자연부적응이라는 이유로 이곳으로 더 와야 할지 모른다. 그러면 이곳 반달곰들의 삶의 조건은 더욱 악화할 것이다. 지금도 일부 반달곰은 사육장 안을 빙빙 돌거나, 왔다갔다하는 정형행동을 보인다. ‘정형 행동’은 의미 없이 틀에 박힌 행동을 반복하는 것으로 넓은 행동반경을 가진 야생동물을 좁은 우리에 가뒀을 때 나타나는 스트레스 증상이다. 전문가들은 정형 행동이 동물 복지 상태를 판단하는 대표적 지표 중의 하나라고 한다.

 

나는 반달곰 복원사업에 대해 100% 동감하며, 지리산에 적응하지 못한 반달곰들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태학습장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렇지만 이 반달곰들이 지금처럼 순번제로만 마당에 나올 수 있으며, 마당에 나와서도 정형 행동까지 보이는 현실을 개선하지 않는 채, 지리산에서 살아가는 반달곰만 신경 쓴다면 반달곰 복원사업은 이미 원래의 목표를 상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태학습장의 반달곰들에게도 지리산의 자연보다는 못하지만 그들의 꿈과 삶이 나름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덥고 습한 여름이 오기 전에 그와 관련해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