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가슴곰 KM 53, 너를 응원해

‘반달가슴곰 KM 53’. 너의 이름을 들었을 때, 참 특이하고 외우기 힘든 이름이라고 생각했어. 어쩌다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국립공원연구원의 설명에 의하면, K는 한국(Korea)을 뜻하고 M(Male)은 수컷을, 53은 53번째로 지리산에 풀어줬다는 의미라네.

여기서 나는 ‘풀어줬다’는 말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싶어.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는 반달가슴곰이 무척 많았다고 해. 곰은 우리 민족의 시조이고 고조선의 창업 왕인 단군에 관한 이야기, ‘단군신화’에도 나오잖아. 그런데 그 많던 곰들이 거의 사라져버린 거야. 일제 강점기 때 해로운 동물이라는 이유로 1200마리가 넘는 반달가슴곰을 잡아서 죽였고, 한국전쟁과 경제성장만을 추구한 산업화 과정에서 숲이 불타고, 개발되어 야생동물의 삶터가 파괴되었기 때문이지.

1980년대까지만 해도 30마리 이상 살던 반달가슴곰이 1990년대 중반에는 5~6마리밖에 남지 않게 되었어. 웅담(반달가슴곰의 간)이 몸에 좋다고, 웅담을 원하는 사람들이 엄청난 돈을 주니까 밀렵꾼들이 깊은 산 속에 올무나 덫을 놓고, 총이나 화약을 들고 들어가 반달가슴곰을 죽였기 때문이야. 너무 끔찍한 이야기지.

우리나라에 반달가슴곰은 사라졌다고 절망하던 그때, 반달가슴곰의 흔적이 지리산에서 발견된 거야. 1996년 가을의 일이야. 그때부터 정부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반달가슴곰 조사를 시작하였고,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반달가슴곰이 완전히 사라지겠다고 판단한 거야. 그래서 2004년부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시작했어.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은 한반도에 살던 반달가슴곰과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반달가슴곰들을 중국, 러시아, 몽골 등에서 데려와서, 자연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시킨 후에 지리산에 풀어주는 거야. ‘풀어준다’는 말에는 이 모든 것이 포함되어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아.

나는 너를 ‘반달가슴곰 KM 53’ 대신에 ‘반달곰 오삼이’라고 부르고 싶어. 괜찮지? 우선 내가 알고 있는 너에 대해 말해볼게. 너의 엄마는 ‘반달가슴곰 CF-37’(중국에서 태어난 암컷, 37번째로 지리산에 풀어놓은 반달가슴곰)이고, 너는 2015년 1월 지리산 자연적응훈련장에서 태어나, 그해 10월부터 지리산에서 살게 되었어.

2016년 9월 지리산국립공원 불무장등에서 사라졌던 네가 발견된 날은 2017년 6월 14일이고, 지리산에서 100km나 떨어진 김천 수도산 자연휴양림이었어. 수도산에 나타난 반달가슴곰이 너인 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지? 그건 너처럼 복원사업 중인 반달가슴곰 귀에는 발신기가 달려있어 그 신호를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야.

환경부는 수도산 자연휴양림에서 발견된 내가 혹시라도 사고를 날까봐 지리산으로 잡아와서 자연적응훈련을 시킨 후 지리산에 풀어줬어. 자연적응훈련은 네가 사람을 무서워하도록, 사람을 피해가도록 하는 훈련이래. 지리산으로 온 너는 함양, 거창을 거쳐 다시 수도산으로 갔어. 너는 그곳까지 가기 위해 강과 도로를 건넜고, 주로 밤에 움직였어.

그런데 안타깝게도, 수도산에서 주민들에게 발견되어 다시 지리산으로 잡혀 왔어. 내가 너를 처음 만난 건 네가 잡혀온 그날, 7월 25일이었어. 나와 친구들은 네가 지리산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반달곰 오삼이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라’고 쓰인 안내판을 들고 시위를 했거든. 그때 나는 ‘왜 나를 잡아왔냐.’고, ‘내가 뭔 잘못을 했냐.’고, ‘나는 자연에서 살고 싶다’고 절규하는 외마디 소리를 들었고, 애원하는 네 눈빛을 보았어. 슬픔과 원망이 섞인 너의 눈빛을 보는 순간, 나는 내가 감옥에 갇힌 것처럼 절망스러웠어.

그날부터 나는 너를 석방하라는, 반달가슴곰을 포함한 야생동물에게는 스스로 삶터를 찾아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고, 여러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 너는 철장을 나오게 되었지. 2017년은 너에게 잊지 못할 해일거야. 그 모든 기억들을 안고 너는 지리산에서 겨울잠을 잤어.

2017년 7월 25일, 수도산에서 잡혀와 철장에 갇힌 반달곰 오삼이
 
2017년 7월 25일,
지리산 자연학습장으로 잡혀온 반달곰 오삼이에게 자유를 주라고 시위를 하는 중

2018년 4월, 겨울잠에서 깨어난 너는 수도산으로 가기 위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5월 5일 새벽 4시, 대전통영고속도로에서 버스에 친 거야. 네가 버스에 친 후, 지리산자락 주민들은 네가 사고를 당한 그 고속도로에서 시위를 했어. ‘인간만을 위한 땅이 아니다. 반달곰의 통행권을 보장하라!’라고.

2018년 5월 22일(생물다양성의 날),
대전통영고속도로 생초 나들목 근처에서 시위 중인 지리산자락 주민들

버스에 친 너는 국립공원연구원 야생동물의료센터로 이송되어 8시간 넘은 수술을 받았지. 다행히 너는 몸도 회복되고, 사람을 회피하는 등 야생성도 유지하였어. 환경부는 너를 수도산에 풀어놓기로 결정했고, 8월 27일 너는 그리던 수도산으로 가게 되었어. 수도산으로 간 너는 수도산, 가야산, 독용산 등을 왔다 갔다 하다가 가야산 상왕봉 아래에서 겨울잠에 들어갔지, 반달곰 오삼아, 2018년은 참 힘들고 아팠던 날들이었지?

2018년 8월 27일,
교통사고에서 회복한 후 수도산에서 풀어놓자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가는 반달곰 오삼이
(사진제공: 국립공원연구원)

2019년, 너는 이전보다 더 왕성하게 활동했어, 수도산, 가야산을 벗어나 구미 금오산까지 갔다가 수도산으로 돌아왔는데, 사드기지를 지나고, 3개의 국도와 1개의 고속도로를 넘나들고, 사람들이 키우는 벌집에 피해를 일으켜 여러 차례 방송과 신문에 등장했지. 사람들은 네가 나타나면 너를 다시 잡아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는 회의를 한단다. 그때마다 반달곰 오삼이는 좀 특별한 반달가슴곰이니 지켜보자는 의견이 많았어.

겨울잠에 들어가는 국립공원연구원 자연학습장의 반달가슴곰

2020년, 너는 수도산, 가야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6월 중순 민주지산으로 이동했어. 생각해보면 2018년 수도산으로 온 이후 너는 수도산의 동남쪽과 북쪽에 위치한 큰 산들을 다니면서 뭔가를 찾았던 거 같았어. 내가 너와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먼 곳까지 왔다 갔다 했는지 물어볼 거야? 그런 날이 온다면, 자세히 얘기해줘야 해. 2020년에도, 이전에 겨울잠을 잤던 가야산에서 겨울잠에 들어갔으니 너는 가야산을 좋아하나봐.

2018년 이후 수도산, 가야산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네가 2021년 6월 지리산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정말 깜짝 놀랐어. 100km 걸어 다시 지리산으로 온 이유, 우리는 네가 여자 친구를 찾아 왔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 네 나이가 7살이니 사람 나이로 보면 30살쯤이고, 반달가슴곰에게 7살은 번식력이 왕성한 시기라고 알려져 있어서.

지리산으로 돌아온 네가 머물렀던 그 근처에는 암컷 반달가슴곰이 3마리 정도 있었다고 하니, 진짜 너에게 좋은 일이 있었던 걸까? 한 달가량 지리산에 머무르던 너는 7월 중순 다시 가야산으로 갔어. 100km 먼 길, 도로를 건너고, 사람을 피해, 돌아간 그곳 수도산과 가야산은 너에게 ‘제2의 고향’일까? 여기 지리산은 진짜 고향이고.

반달곰 오삼아,

나는 너를 두 번 만났어. 그리고 그때 들었던 너의 음성과 눈빛은 여전히 내 마음을 흔들고 있고. 너로 인해 우리들은 야생동물과의 공존은 종이가 아니라, 책상과 컴퓨터에서가 아니라, 도로와 숲 등 현장에서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또 너로 인해 우리들은 반달가슴곰이 대단히 용감하고, 무한한 상상력을 가진 동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

이제 나는 너의 새끼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기다릴 거야. 그 새끼들 중에 너를 닮은 용감한 녀석이 있다면 너를 따라 수도산으로 가겠지. 또 다른 상상력이 뛰어난 녀석은 숲이 좋은 백두대간을 따라 덕유산, 설악산까지 갈 거고. 아,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다.

너와 너의 새끼들이 열심히 새 세상을 열어가는 동안 나는 야생동물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올무와 덫 등 불법엽구를 수거할 거고, 야생동물의 길을 이어주기 위해 노력할 거야. 그리고 지리산자락 주민만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너희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여길 수 있도록 활동할 거야. 너와 내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고 믿을 거야.

반달곰 오삼아,

사람들 눈에 띄지 말고, 맛난 다래와 영양가 풍부한 도토리 많이 먹고 건강하게 잘 살길 바랄게. 우리 사람들에게 반달가슴곰과의 공존을 꿈꾸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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